욥기 장별설교

욥기32장

오창어울림교회 2010. 5. 6. 11:30

욥기32장

 

오늘 말씀부터 37장까지는 엘리후의 중재적인 변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앞서 언급되어진 욥의 세 친구와는 별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의 변론을 모두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욥의 고집을 꺾지 못한 세 친구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면서 자신이 변론에 나서게 됩니다.

 

욥의 세친구들은 지금까지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정죄하였습니다. 이러한 친구들의 주장에 욥은 친구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결코 악을 행하지 않았고 의를 행하였음을 주장하자 그의 친구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1절에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사람이 말을 그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아무 말을 하지 못하자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면서 말을 합니다. 엘리후는 먼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과 또 욥의 세 친구들이 욥에게 아무 말을 하지 못하자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그들이 말하는 것을 멈추자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연장자가 말할 때 연소자가 겸손히 듣는 사회적인 풍습이 있었습니다. 엘리후는 세 사람과 욥의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인내했던 것입니다.

 

11절-12절에 보면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과 욥의 변론을 처음부터 주의깊게 옆에서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 가운데 욥을 꺾을 만한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 중에 있을 때 와서 욥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말만 했습니다. 또한 욥을 이해하려는 사랑보다는 욥을 판단하고 누르는 강압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욥은 도저히 승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과 그 친구들의 변론 내용을 모두 듣고 나중에서야 변론에 나섰습니다. 그는 욥에게 올바른 해답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참고 있을 수 없을 만큼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19절에 보면 엘리후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말을 하고 싶을 때에 계속 참게 되면 말이 가득하여 쌓이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봉한 포도주가 발효되어 가죽 부대를 부풀리는 상태와 같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말을 참다가 결국 말을 꺼내게 되었고 말을 해야 자신이 시원할 것이라고 하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참다가 말을 한다고 해서 말에 대한 실수를 어느 정도 덜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모두 결코 옳은 변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는 것에 있어서 어떠한 상황이라든지 조심스러운 태도와 신중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21절,22절에서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은 어떠한 편견도 없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자신의 주장이 바뀌거나 사람에 따라 자신의 말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엘리후는 자신의 말은 정말 많은 생각한 끝에 그리고 아무 편견도 없이 자신의 말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옳은 말과 옳은 판단을 가지고 한다라더라도 우리 인간은 실수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하나님을 의식하므로 절제된 언어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욥과 그의 세 친구들간의 논쟁이 일단락되고 오늘 본문에서는 엘리후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였습니다. 엘리후의 등장으로 욥의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엘리후가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그리고 사람과 환경에 편견없이 자신의 말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보면서 우리들도 항상 무슨 말을 하고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신중하게 그리고 영적인 상황을 알고 말과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행동하고 말을 해도 실수하는 존재들이 바로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절망과 비판의 말보다는 사랑과 칭찬과 행복의 말을 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