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33장
욥기 33장
32장에서 엘리후의 등장 한 이후 오늘 말씀부터는 엘리후가 본격적으로 변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엘리후는 먼저 자신이 하는 말을 욥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부탁하면서 본론에 들어갑니다.
엘리후는 먼저 욥이 자신이 하는 말을 들으며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말이 정직하고 진실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엘리후는 4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엘리후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그분의 영감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자이기때문에 욥에게 충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지금 엘리후는 자신의 말의 권위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있음을 역설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신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것을 욥에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특히 엘리후는 욥도 자신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피조물이며 자신의 존재가 욥을 두렵게 할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엘리후가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대화하지 않을 것이고 욥의 말을 듣겠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엘리후는 오늘 말씀에서 고난에 대한 유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꿈과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시기도 한다고 엘리후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엘리후는 인간이 뼈가 늘 쑤시고, 음식을 싫어하고, 몸은 쇠약해지며, 생명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그러면서 엘리후는 26절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느니라”라고 말하면서 질병의 고통을 깨닫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은 단순한 '고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욥이 고난을 이겨내고 받은 축복과 영광은 욥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고난 후에 반드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있는 것을 믿는 다면 우리는 분명히 현재의 고난과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고난은 먼저 우리를 훈련하고 자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좋은 군사는 쉼 없는 훈련에 의해 탄생됩니다. 그래서 마치 전쟁터에 나갈 병사를 훈련시키듯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한 신앙을 가지기 위해 고난이라는 것을 통해 신앙의 연단을 시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은 우리가 더욱더 굳건한 믿음에 서도록 연단을 위한 훈련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 주실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십니다. 이럴 때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은 훈련과 교정을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난을 받는 자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항상 의롭고 신실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은 축복과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은 결코 보복이나 진노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 주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이 사랑에 기초한 고난은 결국 새로운 축복으로 연결됩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뒤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어려움이나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구나 하면서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복을 우리는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한 다양한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욥의 모든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고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지혜와 경험을 가지고 욥을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결국 욥이 고난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러 찾아온 그들은 욥을 위로한 것이 아니라 16장 2절 말씀처럼 재난을 주는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뜻에 바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을 더욱 번뇌케 하거나 고통을 더하게 할 수 잇습니다.
우리는 오늘 고난의 문제를 생각해보면서 고난당하는 것 자체만 보지 말고 그 뒤에서 역사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잇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고난중에도 기뻐할 수 잇고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살아갈 때 고난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함으로써 늘 감사와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잇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