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장별설교

로마서9장

오창어울림교회 2012. 6. 3. 10:34

 

 

 

로마서 9

 

로마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전반부는 1-8장으로 그리고 후반부는 오늘 9장에서 마지막인 16장까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8장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우리들은 죄와 율법과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되어 이제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사도바울은 1장에서 8장까지 하나님이 구원계획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살펴보는 로마서 9-11장은 유대인들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에게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항상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이렇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바울은 더욱 자기 동족에 대한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의 안타까움을 1.2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1-2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사도바울은 자기 동족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 때문에 큰 근심이 되었고 이 근심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는 마음에 그치지 않는 큰 고통이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고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처절한 울분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마지막부분에서 구원의 감격으로 인해 기뻐하던 바울이 갑자기 9장을 시작하면서는 슬픔과 고통이 너무나 커서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기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이 멸망 당할 것을 생각하면 슬픔과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도바울이 이토록 원통해하고 울분에 차 있습니까?

4,5절 말씀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은 민족입니다. 이들이 받은 특권을 보면 양자, 영광, 언약, 율법, 예배, 약속, 조상, 그리스도 등 하나님이 다른 미족에게는 주지 않았던 특별한 은총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특권을 누리는 백성이라면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가장 먼저 구원받아야 할 민족이고 가장 많이 예수님을 믿어야 할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던 그들은 실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복음을 거부하며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당연히 제일먼저 구원받아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복음의 원수가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사도바울의 가슴은 너무나 아파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큰 고통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자기 동족인 유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절 말씀을 보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아 버림을 받는 한이 있어도 나의 사랑하는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그 댓가를 치르겠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러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평생 자기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쉴틈없이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돌로 치고 때리고 재판을 붙이고, 감옥에 가두며 심지어 죽이려고 했던 자들이 바로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잡으려고 밤낮 성문을 지키기도 했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유대인이 4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입장에서는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사랑하는 구령의 열정인 것입니다.

 

사실 영혼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은 예수님께서도 보여주셨습니다.

마태복음 9:36 말씀에 보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면서 목자없는 양과 같이 완전히 지쳐 탈진해 있는 백성들의 영혼을 보시면서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안됬다. 불쌍하다는 동정의 마음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고 그들의 슬픔과 괴로움이 나의 마음 깊은 곳까지 사무치는 아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면서 그들의 괴로움, 아픔, 슬픔, 모든 것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과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외적인 모습을 바라보기 보다는 그들의 영혼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영혼이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영혼에 대한 긍휼한 마음과 사도바울처럼 그 영혼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8장에서만 하더라도 사도바울은 구원의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게 끊겠는가.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끊을 자가 없다고 고백하며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며 구원에 대해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9장에서 사도바울은 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뒤로 한 채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감격스럽고 기쁘지만 나 혼자 구원받은 것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내가 구원받아 구원의 감격이 무엇인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저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니?” “예 제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럼 구원받은 것이 기쁘니” “예 기쁩니다.”

그럼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고통하는 마음이 있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아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구원받지 못해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우리 가족들을 매일매일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주님! 제가 주님에게 버림을 받는 한이 있어도 우리 가족들을, 내 이웃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그 영혼을 어떻게 하면 주님께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