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장별설교

에스라8장

오창어울림교회 2014. 1. 28. 10:31

에스라 8

 

바사왕 아닥사스다는 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를 이스라엘로 보내면서 이스라엘의 2차 귀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1차 귀환 때보다는 훨씬 적은 수였지만, 그래도 70년을 바벨론에서 살면서, 삶의 터전을 내려놓고, 고국으로 귀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제, 에스라는 2차 귀환자들을 한 장소에 모이게 하고, 명단을 확인했는데 그런데 2차 귀환 명단에 레위 자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5절 말씀에 보면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 제사가 절대적으로 중시되던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비록 이들은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서도 제사장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이스라엘로 귀환할 때 제사장직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귀환을 결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제사장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레위인들은 제사장의 일을 육체적으로 돕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바벨론땅에서 정착하고 있던 레위 자손들에게는 고국으로 귀환하는 의미가 제사장들보다는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레위인들이 꼭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레위인들을 소집하기 위해 일곱 명의 족장들과 명철한 두 사람을 레위인들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8명의 레위인들이 함께 귀환에 동참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레위인들을 권유하여 귀환에 동참시키는 그 과정에서 에스라의 신앙관을 볼 수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에스라는 레위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9명의 사람을 보내면서, 그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라는 말씀처럼 에스라는 레위인들의 마음을 돌리게 할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에스라는 무슨 일이든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에 보면 느디님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에 보면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느디님 사람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리 가운데 포함된 것은 전쟁 포로로 끌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들을 성전 봉사에 참여시켰습니다. 말하자면 레위인들을 도와 성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사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부류였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서는 바벨론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바벨론 생활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귀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들은 바벨론에서 생활하는 것이 휠씬 더 나아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따라 나아가게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아무리 내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것을 포기할 수 있는 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성전에 필요한 레위인과 느디님 사람들을 동참하게 한 에스라는 고국으로 귀환 준비를 하는데 그는 먼저 영적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1절 말씀에 보면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환하는데 필요한 모든 준비에 앞서서 에스라는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그가 많은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우리들도 에스라처럼 모든 일을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로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함으로 나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을 위해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준비도 철저히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 중에서 열두 명의 사람을 별도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열두 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드릴 값비싼 예물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겼습니다.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을 향해 간 길은 아주 먼 여행길이었습니다. 에스라서 79절을 보면, 에스라 일행은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나,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약 4개월이 걸린 것입니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가장 큰 위험은 여행자들을 노리는 도적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1절에 보면 이들을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만약 여행길에서 도적떼를 만나게 되면 , 하나님께 드릴 값비싼 예물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목숨까지도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여행길을 떠나기 전에,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살핌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보병과 마병을 가진 바사 왕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갔기에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라가 등장한 에스라서 7장부터 오늘 본문 8장까지 보면 에스라가 행한 모든 것이 순조롭고 형통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스라의 형통은 형통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순조롭게 도착한 예루살렘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에스라서 9장과 10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이방여인들과의 통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시고 그를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 것은 바로 예루살렘 안에 있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순조롭게 인생을 살아가며 형통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초점이 형통한 길을 가는 것, 자체에 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편안하게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목적과 인생의 초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자신이 왜 형통한 길을 걸어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에스라는 이방여인과의 통혼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형통의 길을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편안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 가운데 편안하고 문제가 없다고 우리가 안주하기 보다는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목적인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에스라처럼 항상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내가 어느 환경과 어느 처지에 있든지 간에 항상 하나님의 목적으로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