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1-23
요한복음9:1-23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치유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의 죄때문인지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지 과연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당시에는 부모나 조상이 지은 죄로 인하여 자녀손들에게 선천적인 병이 생기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날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사람 자신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하시고자 일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있고 또한 어렵고 힘든 일, 불행한 일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뿐 만 아니라 불행하고 힘든 일도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단순히 외적인 현상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계신지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빛이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에 보면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그 맹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이후에 보면 예수님은 그 맹인의 육적인 눈만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어두워져 있는 그의 영적인 눈도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 세상은 어두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이 땅의 모든 어두움을 내쫓으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헤메이고 있던 우리들도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빛이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쳐주실 때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맹인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가에서 씻고 난 후에 눈이 밝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충분히 말씀으로도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었을텐데 그런데 왜 굳이 진흙을 발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맹인의 눈에 흙을 바른 것은 새로운 창조 즉 재창조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가능함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는 의미는 영적, 육체적 정결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맹인은 그의 육신의 눈만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빛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영혼이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들이 새로운 존재, 거룩하고 정결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어려움도 있고 힘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을 발견하여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날마다 정결하고 깨끗한 심령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