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25장
오늘 본문말씀은 수아 사람 빌닷의 세번째 변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상대적으로 인간의 비천함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욥을 직접적으로 책망하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그를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아 사람 빌닷은 지금까지 욥의 말을 듣고 욥의 견해를 반박하지는 않지만 나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거스릴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닷의 이러한 주장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어떠한 해결이나 도움을 줄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빌닷의 말하는 내용이 욥을 비판하는 데 사용된 것은 올바르지 않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옳은 말들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이 있으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은 주관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라고 말슴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설명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높다'라는 말은 지위와 신분, 또는 위엄과 웅장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높으심은 '지극한 높음'으로 그것은 '절대적인 높음'입니다. 그 앞에서 모든 만물은 낮아지며 엎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높으심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① 그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 낮은 인간을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세심하게 살피십니다. 이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② 또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우리 인간이 도저히 나아갈수 없을 정도로 높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스스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 인간은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결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높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몸소 친히 '낮은 곳'으로 인간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사건인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오셨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건입니다. 이땅에 친히 우리 주님이 오신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과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2절 하반절에 보면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라고 말슴하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성육신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평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화평과 평화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높으신 하나님이 낮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높으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높으신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셔서 우리를 만나시고 화평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것입니다.
3절 하반절에 보면 “그가 비추는 광명을 받지 않은 자가 누구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빛과 같아서 어둠을 비추고 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빛과 같이 무궁하여 절대로 모자람이 없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넉넉하게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를 잘알려주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주장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라도 자신의 행위로써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죄로 인해 비천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6절에 보면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같은 인생이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사람을 구더기와 벌레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부패하고 부정한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이 미천하거나 나약한 자임을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잇는 것입니다.
오늘 빌닷의 세 번째 변론을 보면서 자신의 논리를 욥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볼 수 잇지만 지금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높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낮고 낮은 이 땅에 친히 하나님께서 오심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분명히 믿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죄와 나약함을 고백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면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또한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