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9:1~17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59편은 표제에 나와 있는 것처럼“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사무엘상 19장의 말씀에 사울왕이 그의 딸 미갈과 함께 있는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사람들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는 사건이 배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할 때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의 등장으로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 때 사울은 골리앗을 죽이는 용사에게는 자신의 딸을 주고 세금도 면제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본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전쟁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울보다 다윗이 휠씬 더 인기가 있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군지휘관으로 임명해서 요즘말로 하면 전쟁의 최전선으로 보내 전쟁을 하게 하였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에게 자신의 맏딸인 메랍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며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계속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울왕은 내심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다가 죽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켜주셔서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하게 하여주셨고 다윗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맏딸인 메랍과 결혼 시켜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메랍을 다른 사람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사실 다윗은 메랍보다는 사울의 다른 딸 미갈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다윗에게 미갈과의 결혼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 결혼조건은 블레셋 사람들 100명을 죽이고 그 증거물을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사울왕은 다윗을 전쟁에서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결혼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블레셋 사람을 죽인 증거물로 블레셋 사람의 포피 200장을 사울에게 바쳤습니다. 사울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딸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의 사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윗을 향한 적개심은 전혀 풀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에게 다윗은 사위가 아니라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대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아들 요나단을 비롯한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오늘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죽임으로써‘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지 말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아버지 사울에게 변호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다윗은 자신이 아무런 죄가 없음을 하나님 앞에 진술하고 있습니다.
3-4절 말씀에 보면“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주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의 잘못, 나의 죄라는 말은 각각 그 의미를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나의 잘못'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을 의미하고 있고 나의 죄는 인간들 사이에 잘못과 실수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도 않았고 사람들에게도 잘못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원수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다윗은 사울을 자신의 왕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향한 자신의 충성심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심지어 사울이 죽고 난 뒤에도 그를 위해 슬퍼하며 애도하였고, 남아 있는 사울의 가족들을 정성껏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사울에 대해 끝까지 신의를 지켰지만 그러나 사울왕을 통해서 너무나도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 다윗은 사울을 향해 칼을 드는 대신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 말씀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원수를 ‘일어나 치려는 자’‘악을 행하는 자’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어나 치려는 자는 군사들이 전쟁에 싸우려 나가기 위해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바로 원수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는 무력과 폭력으로 다윗을 잡아 죽이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는 다윗을 잡아 죽이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원수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이러한 표현들을 써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고 그리고 끝까지 사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그러나 다윗은 오늘 말씀에서 사울을 가리켜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다윗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시련이 너무나도 크고 절박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쫓아다니는 것을 6-7절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6-7말씀에 보면“그들이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왕은 낮에 뿐만 아니라 밤에도 다윗을 죽이려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래서 밤이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들개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무엘상 19장에는 사울이 밤에 다윗을 죽이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죽기까지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는 처절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구원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1절 말씀에서“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1절 끝에 나오는 ‘높이 드소서’라는 말은‘대적들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곳에 둔다’는 의미입니다.‘대적들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곳’은 바로 요새입니다. 다윗은 밤낮 할 것 없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의 에게서 하나님께서 요새가 되어 주셔서 보호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나의 요새가 되어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침’은 어둠의 시간이 끝나는 때입니다. 모든 시련과 공포와 고난이 물러나는 때를 의미합니다. 낮에는 원수들이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하려고 일어나듯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하고 밤에는 먹이를 찾는 들개가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다윗을 찾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요새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다윗은 절망이 확신으로, 고통이 찬송으로 바뀌게 그 날, 그 아침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오늘 다윗은 처음에는 고통스러운 간구로 그의 기도가 시작이 되었지만 그 기도가 끝날 때는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의 기도를 마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고통을 당할 때“이 고통이 과연 끝이 있을까?”할 정도로 큰 고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당장이라도 내가 보복하고 싶고 내가 당한 것 이상의 것으로 갚아주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요새가 되시고 나의 힘이 되심을 믿는다면 고통과 시련 중에서도 찬송과 감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듯이 우리에게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고통이 변하여 기쁨의 삶을 누리며 살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큰 고난과 고통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나의 요새가 되어 주셔서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