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사람이 되어 새생명을 얻고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7장에서는 이제 우리들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거룩하고 순결하며 부족함이 없고 영원하며 흠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법은 완전하지만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이 거룩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법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을 살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분리, 구별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과 구별되고 분리되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겉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또한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오직 한분만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신 분이 있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십니다.
우리는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완성이 되시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죄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누릴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던 이 율법에서도 자유함을 얻게 되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율법이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사도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 보면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한 남자와 결혼을 하면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에 따라서 아내는 남편에게 매이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더 이상 아내를 법적으로 구속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남편이 있는데 부인이 다른 남자를 만나면 이것은 법적으로 부정한 일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고 난 후에는 이 여인은 자유롭게 다른 남자를 만나도 그것을 법적으로 부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이 죽은 여인이 법적으로 자유한 것처럼 우리들도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율법이라는 사슬이 늘 우리들을 얽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영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6절 말씀에 보면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 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육신과 죄와 율법과 사망의 지배를 받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영,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므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가 5절의 말씀처럼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자였지만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4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아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날마다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우리는 본문 말씀을 보면서 율법이 참 나쁜 것이구나, 율법은 필요없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율법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우리의 죄를 알게 하는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율법이 없다면 우리가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탐심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탐심이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이 있어야 우리의 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12절에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죄가 율법을 이용해서 우리들을 죄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다른 사람들은 다 우상숭배를 했는데 나만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야 나만 믿음이 좋구나”하면서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게 합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율법을 잘 지킨 것 때문에 오히려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가 율법을 이용해서 우리를 죄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적으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그런데 죄는 이 율법을 이용해서 우리를 죄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일 먼저 죄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세력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완전히 죄에서 해방시켜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멀리하며 날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바울은 자신의 내적인 갈등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선을 행하고 싶은데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하게 지음을 받은 존재들인데 나도 모르게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것이냐 아니면 짓지 않을 것이냐, 선을 행할 것이냐 아니면 행하지 않을 것이냐 내가 사람을 의식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의식할 것이냐 이러한 들로 우리의 내면 속에서 계속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이 내적인 싸움이 얼마나 심한지를 24절에서 볼 수 있는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구절에서 우리는 사도바울의 정말 처절한 절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는 외롭고 곤고하고 비참한 사람입니다. 지금 내 안에서 악과 선이라는 두가지 본성이 큰 싸움이 있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는 또 고백하기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나님!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 주십시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힘으로 이 죄를 물리쳐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그의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나는 할 수 없고 주님이 도와주시면 나의 모든 죄악이 물러가게 될 것이라는 고백을 드릴 때 우리 안에 있던 죄의 본성은 물러가게 될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주님 지금 내 안에 죄가 있어서 이 죄와 싸워야 하는데 내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하나님의 힘으로 이기게 해주십시오”라고 고백하며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싸워서 항상 영적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