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2:14-23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 가운데 룻은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비록 룻이 이방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와서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알고는 룻에게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이곳에서 이삭을 줍고 또한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물을 마시라고 배려해 주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는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사실 유대인이 이방사람과, 그것도 여자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룻을 불러 함께 식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룻이 이삭을 많이 주을 수 있게 했는데 룻이 주운 보리는 한 에바쯤 되었습니다.
한 에바는 22리터입니다. 당시 일군의 하루 배급량이 0.5에서 1리터 정도인데 22리터라면 나오미와 룻이 몇 주를 먹을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양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나오미는 어디에서 주었는지 그리고 어디서 일을 했는지 묻습니다. 아마도 이만한 보리를 가져오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때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슬픔과 괴로움 속에 있었던 나오미는 희망을 바라보면서 보아스를 축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19절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20절에서도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은 원어로 헤세드라는 말입니다. 이 헤세드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은혜라는 말도 되지만 인애라는 말에 더 가깝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버리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세드는 도저히 사랑 받을 수 없는 자를 그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를 돌보거나 보호해 줄 의무가 없지만 그럼에도 도와주고 지켜주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나오미가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결코 인애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사랑과 보호을 받을 자격도 없고 우리를 보호해줄 의무도 없으신 하나님게서 자발적으로 사랑과 헌신으로 돌보고 보호하심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1장에서 나오미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자신을 괴롭게 하는 하나님이시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니신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되고. 나의 계획대로 안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잘 참고 인내하면 오늘 나오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인애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사랑을 받거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해 반항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아도 은혜와 인애를 베풀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땅에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며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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